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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왜 교종은 한국에 가는가?

음, CNN에 한국 가톨릭 역사와 프란치스코 교종의 신학적 성향에 대해 쉽고 간결하게 정리한 기고문이 있어 가지고 와봤다. 내가 가톨릭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분명 이상한 부분이 있겠지만...개인적으로는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발전한 초창기 한국 가톨릭 역사가 매우 흥미로움.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

(출저 : http://edition.cnn.com/2014/08/12/opinion/why-pope-south-korea/index.html?iref=allsea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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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Franklin Rausch는 Lander University의 역사와 철학 조교입니다. 그는 얼마 전 한국의 대구에 있는 경북 국립 대학교의 Global Summer School에서 근대 동아시아에 대한 강의를 끝마쳤습니다. 그의 연구는 종교와 폭력의 관계, 특히 조선 왕조 때의 반-가톨릭 처형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는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한국 가톨릭 역사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기사의 주장은 오로지 저자의 것입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가 어째서 25년만의 아시아 방문으로 한국에 향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직설적입니다. 제 6회 아시아 청년 대회를 축하하고 한국의 124위 순교자들을 시복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좀 더 복잡한 답변을 하기 위해선 한국 가톨릭 교회의 독특한 역사와 교종의 신학적 어젠다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왜 교종이 이 여행을 떠나는지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기독교 국가인 필리핀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가톨릭 국가는 아닙니다만, 통계에 따르면 최소한 한국 인구의 10%정도가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한국의 가톨릭 교회들은 비-가톨릭 교도들에게 높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다른 종교 공동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공동선을 위해 긍정적 사회 참여를 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종 프란치스코의 방문은 이런 성취들을 놓치지 않고, 한국인들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회를 복음화의 모델로 세우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아시아의 복음화


아시아가 가톨릭 교세 성장의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 성장세를 계속 이어나갈 아시아 청년들과 아시아의 성공 스토리를 조명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복음화는 교종 프란치스코의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그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은 이 주제에 초첨을 맞추며 가톨릭 교회가 변화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기 보다는 오늘날의 세계를 복음화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요구했습니다.


위 권고문 속 <복음화의 사회적 측면>이란 제목의 장에서 보여지듯, 교종의 복음화 개념은 단시 새로운 가톨릭 신자에게 세례를 주는 것에 집중되어 있는것이 아니라, "홈리스들, 중독자들, 난민들, 원주민들, 그리고 점점 더 소외되고 버림받는 노인들" 을 포섭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더군다나 이 교종은 임명받은 성직자들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 권고문 출간 직전 복음화에 있어 평신도들이 능동적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며 "성직주의"를 비난했죠.


그러므로 <복음의 기쁨>에 표현된 교종의 고민은, 평신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복음화 사역으로 비교적 크고 건강한 가톨릭 공동체를 이루게 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성취와 공명합니다.


교종이 방문기간 중 노인이나 홈리스처럼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는 가톨릭 기관인 꽃동네를 방문해 평신도 사도직을 맡고 있는 리더들을 만날 예정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기원


한국 가톨릭 교회의 역사는 1784년, 종교에 관한 중국 서적을 읽은 후 가톨릭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이승훈이라는 한국인 학자가 세례를 받음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승훈은 한국으로 돌아와 다른 이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했고, (시복을 받을 순교자들 중 한명인)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가 1794년 한국에 도착하기 전 이미 4,000여명의 가톨릭 신자가 생기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당국은 신자들이 정부의 통제 바깥에 있는 신성을 인정하는 외국 정부를 용납할 수 없었고, 새 교회를 처형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를 부정하거나 사형을 당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얻었고, 수천명의 신자들은 후자를 택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처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회는 살아남아 몇 번이고 스스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외국 선교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고 신앙을 전파하는 대부분의 일은 평신도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 종교적 관용이 생겨나며 가톨릭 신자의 수가 늘긴 했지만, 한국의 가톨릭 신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습니다. 최근 몇년간 성장세가 느려지긴 했지만, 한국의 교회는 (교회에 따르면) 약 오백만명의 신도수를 보유하고 있는 비교적 건강한 상태입니다.


그와 동시에, 한국 가톨릭 교회는 몇가지 문제점에 직면해있습니다. 성장세는 감소했고, 세례를 받은 많은 가톨릭 새 신자들은 신앙을 버리거나 냉담자가 되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는 교황이 권고문에서 비난한 것처럼 "겉잡을 수 없는 소비주의"와 같은, 서구처럼 탈-산업화 사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갖고 있습니다. 교황이 시복할 순교자들의 중요성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들의 부와 성(sex), 심지어는 삶 그 자체까지도 타인과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희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종은 분명 신앙에 대한 그들의 헌신이 어떻게 한국 가톨릭 공동체의 성장을 이끌었는지 강조하며 자신의 권고문에 있는 주제들을 반복할 것입니다. 교황이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을 광복절 바로 다음날 행할것이란 사실을 한국인들은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교종은 이번 승인과 이를 통한 가르침이 한국과, 나아가서는 전세계의 복음화를 쇄신하는 계기가 되어주길 희망할 것입니다.

 by Franklin Rau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