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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파편

실패한 공산주의와 성배

1980년대 말, 그러니까 체제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동독의 한 극작가는 <원탁의 기사들>이라는 희곡을 썼다.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사 랜슬롯은 묻는다. "세상 사람들은 성배와 원탁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중략) 우리의 정의와 우리의 꿈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중략) 사람들에게 원탁의 기사는 바보, 멍충이, 범죄자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성배를 믿는 걸까, 하고 그는 자문한다. "모르겠다." 랜슬롯은 말한다. "그런 물음에는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 아니, 우리는 성배를 영원히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배가 아니라 성배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아서 왕의 말은 옳지 않은가? "성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디 포기하는 것이 우리뿐이겠는가?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20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해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에릭 홉스본 作, <미완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