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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파편

가짜 자유주의 감상주의를 경계하라

"선생님, 79쪽을 보면, 프로터 씨가 성서에서 가장 한심한 구절로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한다'를 꼽잖아요. 나치가 유대인을 미워해도 된다는 근거로 말한 걸까요? 헉슬리는 반유대주의자인가요?"


조시는 길게 숨을 내쉰 뒤, 부드럽게 대답한다.


"아니."


마이런의 거친 말에 강의실이 조금 술렁인다. 조지는 잠시 동요가 가라앉기를 기다린 뒤 크게 힘두저 말한다.


"아니, 헉슬리는 반유대주의자가 아니야. 나치는 유대인을 미워할 권리가 없어. 그러나 나치가 이유 없이 유대인을 미워한 것은 아니야. 아무도 이유 없이 미워하지 않는데 .... 음, 이 이야기에서 유대인 문제는 제외하도록 하죠. 각자 입장이 어떻든 오늘날 유대인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토론하기란 불가능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다른 소수집단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뭐든 좋아요. 그렇지만 작은 소수집단이어야 합니다. 조직화되지 않고 대변할 위원회도 없는 작은 소수집단 말입니다...."


조지는 환한 표정으로 윌리 브라이언트를 바라본다.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한다. 소수집단의 어린 동지여, 나도 너와 함께야. 윌리는 몸이 퉁퉁하고 표정이 천박하다. 곱슬머리를 잘 빗고 손톱 손질을 깔끔하게 하고 눈썹을 잘 다듬는 데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런 노력 때문에 오히려 더욱 매력 없이 보이기만 한다. 윌리가 조지의 표정을 알아본 게 확실하다. 윌리는 당황한 모습이다. 걱정 마! 내가 이제 너에게 절대 잊지 못할 교훈을 줄 테니까. 너의 소심한 영혼을 스스로 느끼게 해줄 테니까. 손톱 줄을 던지고 삶의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줄 테니까.....


"자, 예를 들어서, 주근깨가 있다고 해서 주근깨 없는 사람에게 소수집단으로 여겨지지는 않죠. 그러므로 주근깨 있는 사람은 우리가 말하는 의미에서는 소수집단이 아니져. 왜 아닐까요? 왜냐하면 소수집단은,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다수에게 위협이 될 때에만 소수집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위협 중에서 상상에만 머무는 것은 없습니다. 이 말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소수집단이 밤사이 갑자기 다수가 되면 어떨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모르겠다면, 더 깊이 생각하세요!"


"좋습니다. 이제 자유주의자를 떠올립시다. 이 강의실 안에 있는 모두가 자유주의자일 겁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말하죠. '소수집단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물론 소수집단도 사람입니다. 사람이죠. 천사가 아니라. 물론 소수지단도 우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자유주의자의 히스테릭한 모습은 아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유주의자의 생각에 빠지면, 흑인과 스웨덴 사람 사이에 아무 차이도 볼 수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됩니다...."


(중략)


"자, 이제 똑바로 봅시다. 소수집단은 우리와는 다르게 보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우리에게 없는 결함을 가진 사람일 겁니다. 우리는 소수집단이 보고 행봉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소수집단의 결함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수집단을 좋아하지 않거나 미워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가짜 자유주의 감상주의로 우리 감정을 속이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면, 안전밸브가 생깁니다. 안전밸브가 있으면, 박해를 덜하게 됩니다. 이런 이론은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믿으려고 애쓰는 바는, 무엇을 오래 무시하면 그냥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인데...."


"어디까지 말했죠? 아, 그렇군요. 자, 이제, 이 소수집단이 박해를 받는다고 가정합시다. 이유는 상관없어요. 정치적, 경제적, 심리적 이유, 다 좋습니다. 아무리 잘못된 이유라도 늘 이유가 있기 마련이죠. 그게 제 관점입니다. 그리고 물론 박해 그 자체는 늘 잘못된 것입니다. 그 점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분명히 찬성하겠죠? 그러나 무엇보다 나쁜 것은, 우리가 이제 또다른 자유주의 이설에 들어가는 겁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말합니다. 다수가 박해받는 일은 몹시 나쁘며, 그러므로 소수는 박해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까? 악한이 더 나쁜 악한에게 박해받지 않도록 막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기독교도는 죽으면 모두 성자가 되어야 하나요?"


"자,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소수집단도 나름의 적대심을 갖고 있습니다. 소수집단은 다수에 대한 공격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소수집단은 다수를 미워합니다. 이유가 엇지 않죠. 소수집단은 다른 소수집단까지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소수집단은 저마다 자기 집단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자기 집단이 가장 심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죠. 더 나아가서, 소수집단이 모두를 미워할수록 더 큰 박해를 받고, 소수집단은 더 험악하게 변합니다! 소수집단 사람들이 험악하게 변하는 게 사랑받기 위해서일까요? 그럴 리 없죠! 그렇다면 왜 소수집단 사람들이 착해져야 할까요? 착하게 변해도 돌아올 것은 증오밖에 없지 않나요?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상황을 미워합니다. 그런 상황을 일어나게 만든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미움의 세계에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있으면 사랑을 알아볼 수 없어요!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사랑 뒤에 무엇이, 무슨 꿍꿍이나 계락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作, <싱글맨> 中